만휴정(晩休亭)

2012. 7. 25. 12:37鄕·고향촌

 

 

 

 

 

 

 

 

 

 

 

 

 

 

 

 

 

 

 

 

 

 

 

 

 

 

 

 

 

 

 

 

 

 

흔히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은 없다'고들 하지만 안동의 만휴정만큼은 예외다.

빼어난 풍경 속에 곱게 숨어 있는 만휴정은 물도 좋고, 정자는 더 좋다.

안동에서 영천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 길안천에 합류하는 묵계(默溪)의 물길을 따라 걸어 오르면

10분도 채 안 돼서 수묵화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법한 그윽한 비경이 펼쳐진다.

바로 만휴정 원림(園林)이다.
만휴정을 찾아가노라면 먼저 잦은 비로 제법 위세가 당당한 송암폭포부터 만나게 된다.

폭포를 건너다보는 자리에 서면 정작 폭포보다는 폭포 위 암반에 들어서 있는 정자

만휴정의 자태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정자 앞에 다가서면 너럭바위를 타고 비단처럼 흘러내려 온 곡간수가 담겨 흐르고 있고,

그 물길 위에는 통나무 네개를 포개서 만든 제법 긴 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면 정자의 쪽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만휴정의 누마루에 앉으면 마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하다.

난간에 기대서 낮은 담장 너머로 오랫동안 계곡을 건너다보는 것도 좋겠고,

시원한 마루에 누워 잠깐의 오수(午睡)를 즐겨도 좋겠다.

 

만휴정의 주인은 조선 전기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보백당 김계행이다.

그는 마흔아홉의 늦은 나이에 대과에 급제해 쉰이 넘어서야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예순일곱까지 관직에 있었지만 연산군의 폭정으로 말년에는 '벼슬을 그만두겠다'는 사직소를 올리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무오사화이후 일흔한살이 돼서야 고향 땅에 돌아와 만휴정을 짓고

여든일곱의 나이로 임종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일흔 한살의 귀향. 늦어도 많이 늦었다.

정자의 현판을 애초에 '쌍청헌'이라 했던 것을

'저물 만(晩)'에 '쉴 휴(休)'를 써넣어 '만휴정'으로 갈아 매단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만휴정의 서쪽 방 앞에는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풀어보자면 '우리 집에는 보물이 없다. 보물이 있다면 맑고 깨끗함이다'라는 뜻이다.

그가 '우리집의 보물'이라고 꼽은 청백(淸白)이란 곧 '청렴함'을 이르는 것이겠지만,

'맑고 깨끗함'이라고 해석한다면 그가 꼽은 보물 중에는 만휴정도 포함되지 싶다.

만휴정의 원림이 품고 있는 자연이 그지없이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만휴정 안내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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