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루(映湖樓)
2012. 9. 13. 10:24ㆍ鄕·고향촌
영호루가 전국적인 명소로 알려지게 된 것은 공민왕(恭愍王, 1330~1374) 때의 일이다.
1361년(공민왕 10) 10월 홍건적이 침입하여 개경이 함락되자,
공민왕은 남쪽으로 몽진하여 경상북도 안동에 이르게 되었다.
공민왕은 자주 영호루에 나아가 군사 훈련을 참관하고 군령을 내렸으며,
배를 타고 유람하거나 물가에서 활을 쏘며 심회를 달랬다.
홍건적이 물러나고 개경으로 환도한 후에도 이곳을 잊지 못하여 1366년(공민왕 15) 겨울 친히 붓을 들어
‘영호루(映湖樓)’ 석 자를 써서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권사복(權思復)을 불러들여 면전에서 주었다.
고려시대 정자로 안동의 남쪽 정하동 낙동강 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날에는 영호루 앞쪽으로 남쪽에서 안동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통과하는 나무다리가 있었고,
뒤쪽으로는 안동 읍성과 안기역으로 가는 길이 나뉘어져 있었다.
위치상 시내와 가깝고 경치가 좋으며,
영호루 앞에 맑은 강물이 호수를 이루어 배를 띄우고 선유하기에 알맞아 고을 사람들과
안동을 찾는 나그네들의 놀이터로도 이름이 높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