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김좌진-토정 이지함 묘소

2011. 6. 5. 18:49浪·떠돌이

 

백야 김좌진 장군 묘소

 

 

 

 

 

 

 

 

 

 

 

 

 위치: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산 50

       

독립운동가인 백야(白冶) 김좌진(1889∼1930) 장군의 묘소이다.
       홍성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장군은

개화사상이 투철하여 15세 때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논밭을 나누어 주었다.   

       또한 1905년 호명학교를 설립하여 문맹퇴치에 앞장섰으며,

1913년에는 군자금을 모금하다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17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광복단에 가입한 이후

북로군정서의 사령관이 되어 독립군을 훈련시켰으며,

이를 기반으로 청산리에서 일본과 전투를 벌여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승리를 이루었다.

     조국광복을 위해 노력했던 장군은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해 암살 당했다.

       암살 직후 만주땅에 묻혔다가 아내 오숙근 여사가 1940년 장군의 유해를 밀감상자로 위장해

       비밀리에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안장하였다.

       그 후 1957년 부인이 타계하자 아들 김두한이 현 위치에 합장하였다.

현재 묘역에는 뒤편으로 담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봉분은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상석과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옆에는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마(馬)석상 한 쌍이 세워져 있다.

 

 

토정 이지함 선생 묘소

 

 

 

 

 

 

 

 

 

 

 

 

위치 ; 충남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 국수봉 기슭

 

토정 비결을 지은 토정 이지함 선생의 유택을  답사, 참배 하였다.

묘소는 토정 선생이 직접 택지하여 그의 일가 14기의 묘소가 함께 있는 집단 가족 묘원인 셈이다.

토정 선생의 선대와 그분의 삼형제분의 묘소가 형님을 가운데 두고 옆으로 나란하게 안장 되었다.

그 아래로는 각기 직계 후손들이 묻혀있다.

뒤 편에서 건너 보이는 안산은 보령만을 건너서 삼봉이 눈에 들어 온다.

음택지에 능하지 않은 범인의 눈으로 보아도 길지 중의 길지 같다.

여기에 택지하여 부모님을 경기도에서 천장하고 뒤이어 중형이 정승의 반열에 올랐다니 가히 지세의 운이 놀랍다.

열 네기의 묘소 모두 치장이 화려하지 않다.

목은 이색 선생의 후손 답게 검소, 간소한 묘역 치장이 우리에게 반면 교사 의 교훈을 일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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