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廣寒樓)
2016. 10. 18. 09:43ㆍ浪·떠돌이
보물 제281호. 조선 시대의 재상 황희가 남원에 유배 가서 1418년 현재보다 규모가 작은 누를 지어
광통루(廣通樓)라 했는데, 1434년 남원부사 민여공(閔汝恭)이 증축했고,
1444년(세종 26) 전라관찰사 정인지(鄭麟趾)에 의해서 광한루라 불리게 되었다.
광한루란 말은 달 속의 선녀가 사는 월궁의 이름인 광한전(廣寒殿)의 '광한청허루'(廣寒淸虛樓)에서 따온 것이다.
1461년 신임부사인 장의국(張義國)이 요천강(蓼川江) 물을 끌어다 연못을 조성하고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를 화강암과 강돌로 축조하여 월궁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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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은 날이 "조선 엽기 연애사" 드라마 촬영 중이라 제 모습 바르게 담을 수 없어 아쉬움이 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