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3. 17:36ㆍ州·옛고을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 전적지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 김시민(1554~1592)과 3,800명의 군사가
3만 명의 왜적을 통쾌히 물리친 곳으로 진주대첩의 전승지이다..
삼국시대에는 거열성, 통일신라시대에는 만흥산성, 고려시대에는 촉석성,
조선시대부터는 진주성 또는 진양성이라고 불렸다.
언제 축성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백제의 거열성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왜구들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토성이었던 촉석성을 석축으로 수축했으며,
광해군 10년(1618)에도 성을 수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성의 둘레는 1.7km로 성 안에는 촉석루, 의기사, 북장대, 호국사 등의 유적들이 있다.
-문화유산 발췌-
몇 차례 스쳐지나 가면서도 가보지 못했던 진주 남강근처를 봄날 마음먹고 찾았다.
예로부터“북 평양, 남 진주’라고 했듯이 진주는 대중가요의 산실이자 풍류의 고장이다.
일찍이 교방문화(敎坊文化)가 꽃 피웠던 곳으로
그 전통은 자연 현대 대중음악에 영향을 끼쳐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가요를 만드는 등
한국가요사의 중심에서 활동한 많은 예인(藝人)을 배출하였으며, 많이 불려졌다.
순수한 창작가요를 발표한 김서정(金曙汀),
아코디언으로 올드 팬들의 기억 속에 생생한 작곡가 손목인(孫牧人),
가요황제로 추앙받는 가수 남인수(南仁樹),
작사·작곡가 이재호(李在鎬),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자 이봉조(李鳳祚),
영화음악 작곡가 정민섭(鄭民燮) 등은
대부분 방송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한 시대를 주름잡으며
한국 가요계를 이끈 음악인으로 모두 진주 출신들이다.
그들은 고향인 진주를 소재로 작곡하고, 노래했다.
이들 외에도 진주를 노랫감으로 삼아 불린 노래 또한 많다.
「진주난봉가」,「진주라 천리길」을 비롯하여
「진양강산」,「남강의 추억」,「내 고향 진주」,
영화주제가 「진주는 천리 길」,「촉석루의 하룻밤」,「논개」 등 수십 곡에 이른다.